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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통계의 창"에 기고된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 김성신 교수님의 글
2021-07-26 10:11:21 조회수2874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융합을 추구하는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


그림 1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최종 경기에서 첫 수를 두고 있는 이세돌(제공: 한국기원)

필자가 고등학생이었던 1996년도에 딥블루라는 IBM이 만든 컴퓨터가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겼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뉴스를 보면서 체스나 장기 정도는 컴퓨터가 이길 수 있겠지만 바둑은 어림도 없고 앞으로도 인간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도 바둑을 잘 두진 못하지만 대략적인 경기방식을 알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 배운 확률이론으로 따져보더라도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아서 컴퓨터가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였다. 20년이 지난 2016년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알파고의 경기 소식을 들었을 때도 컴퓨터가 감히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 대표인 이세돌은 한 판을 제외하고 알파고에 모두 패하였고 그 뒤로 알파고는 더 이상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면서 급기야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림 1). 그 후로도 인간이 둔 바둑의 기보를 학습하지 않고 바둑의 게임 규칙을 가지고 100% 강화학습 방식만을 이용한 알파고 제로는 기존의 알파고를 훨씬 뛰어넘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한계와 목표

구글 딥마인드사의 최고경영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카이스트에서 했던 강연에서 딥마인드의 최종 목표는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범용인공지능의 유일한 예는 우리의 뇌라고 하였다. 인공지능은 바둑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전에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연어처리에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도 가능해 졌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으로 운전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것이며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난치병들도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인공지능이 폭넓게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인공지능이 가진 한계점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인간의 뇌처럼 다양한 과제를 학습하고 적용할 수 있는 일반화된 지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며, 둘째는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와 에너지가 인간의 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서 학습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세돌을 바둑에서 이겼던 알파고는 바둑 이외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활용될 수 없고(물론 이후로 바둑, 장기, 체스를 동시에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개발되었으나 이 또한 범용지능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학습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모하면서 한 개인이 평생 둘 수 없는 양의 바둑을 두었다. 이에 반해 바둑경기를 두는 동안 이세돌의 뇌가 사용한 에너지는 오렌지 주스 한 잔에 해당하는 에너지만큼도 되지 않으며 또 평생 두었던 바둑 경기의 수를 따져보아도 수 만 경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지를 인식하고 자연어를 처리하는 딥러닝시스템을 학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데이터의 양을 따져보아도 인간이 평생 동안 학습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인간은 만 3세만 되어도 최소한의 학습자료만으로도 사물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의 기본적인 문법까지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뇌처럼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일반적인 지능을 갖추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길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비교적 짧은 뇌과학의 역사

그렇다면 새로운 차원의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예인 뇌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 왔는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다른 기초과학에 비해서 뇌과학의 역사는 매우 짧다. 달리 말하면 우리 인류가 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은 대략 150년 전과 수천년 전을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령, 19세기에 유행하였던 골상학은 머리의 모양과 크기로 인간의 심리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현재 골상학의 주장들은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0세기 들어서도 인간의 뇌기능에 대한 이해가 매우 제한적이어서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뇌의 전두엽 일부를 자르거나 다른 부분과의 연결 부위를 끊는 뇌 절제술이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러한 수술은 70년대 초까지 이어졌는데(얼음을 깨는 송곳을 사용한 간단한 시술로까지 발전함) 이 방법을 개발한 안토니우 모니스는 1949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예는 뇌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실험 참가자라고 할 수 있는 환자 H.M.(헨리 몰라이슨: 1926-2008) 이다(그림 2). 그는 뇌전증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에는 그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던 해마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이 후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심각한 부작용으로 평생 동안 고통을 받았다.

이처럼 인간의 뇌에 대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지식들은 최근 50년 이내에 얻어진 것들이다. 최근 50년 동안 뇌과학의 발전을 이끄는 혁신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핵자기공명영상(MRI) 을 포함한 다양한 뇌영상 기술의 개발이다. 이러한 혁신에 힘입어 2013년도에 미국은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와 같이 인간의 뇌지도를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수십억 달러 예산규모인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출범하였고 유럽연합, 중국 및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뇌연구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5년동안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뇌연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Neuroscience-inspired AI (뇌과학에 영감을 받은 인공지능 연구)

다시 데미스 하사비스의 말을 인용해 본다면 범용지능의 유일한 예인 뇌에 대한 연구는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날 인공지능의 핵심기술이 된 딥러닝에서 사용하는 합성곱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 CNN) 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시각피질에서 일어나는 위계적인 정보처리과정과 유사하다. 시각 자극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자극의 방향이나 경계와 같은 정보는 시각피질의 가장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제 1차시각피질에서 처리되고 이 정보는 그 다음 몇 단계의 시각피질을 거쳐가면서 점점 복잡하고 일반적 또는 추상적인 정보를 처리하게 되며 최종적으 로 하측두엽(inferior temporal lobe)에서 시각자극과 관련된 객체에 대한 인식이 일어난다. 다른 예를 들면, 구글 딥마인드에서 2015 년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Deep Q-Network(DQN)는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컴퓨터가 오락실용 고전게임인 아 타리 게임을 인간 수준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학습시킬 수 있 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DQN 의 핵심 아이디어는 메모리 버퍼에 학 습 데이터를 저장하였다가 임의적 샘플링을 통해서 다시 학습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는 뇌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을 생성하는 해마체의 반복재생(replay) 현상을 모사한 것이다. 실제로 데미스 하사비스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해마체의 기능에 대한 것이다. 필자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때 연구실의 동료였던 Jane Wang 은 현재 구글 딥마인드에서 일하고 있는데 경두개자기자극기로 해마체의 기억능력을 향상시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를 수행하여 사이언스지에 출간한 적이 있는 뇌과학자이다.

이 밖에도 자연어처리에 많이 활용되는 재귀적 피드백을 가 지고 있는 Recurrent Neural Network(RNN) 도 작업기억(working memory) 을 구현하는 전두엽의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애초 에 CNN, DQN, RNN 과 같은 딥러닝 기술들은 인공신경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결국 최초의 아이디어는 뉴런과 시냅스로 이루어진 신경계의 구조와 정보처리과정을 모방한 것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할수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반드시 뇌를 모방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뇌가 인공지능 개발에 많은 아이디어를 준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인공지능 분야 연구자들은 실제로 뇌과학에 관심을 갖거나 공부하지 않는다. 애초에 실리콘 반도체를 기반으로 구현되는 인공지능과 단백질과 같은 유기체로 구성된 뇌가 같은 작동원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시스템이 수행하고자 하는 기능을 최적화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뇌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의식과 같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소 불필요한 요소를 구현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할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인류 최초로 동력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에 대한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새의 나는 방식에서 비행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사실이고 애초에 하늘을 나는 새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인간은 하늘을 날려고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이트 형제가 새의 비행방식에만 집착하였다면 발명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라이트 형제 이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새가 나는 방식을 모방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실제로 새가 나는 정확한 원리는 동력비행을 성공하고 난 이후에서야 알 수 있게 되었다(그림 4).

인류는 이제 하늘을 나는 것을 넘어서서 화성에 탐사선을 내는 수준에 도달하였고 더 나은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해서 새가 나는 법을 연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바둑과 같이 극히 제한된 과제를 학습하는 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정한 지능을 갖추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며 따라서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사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아직 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없다

그림 4
레오나르도다빈치가 디자인한 사람의 팔 다리를 이용하여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게 디자인한 비행기(위). 라이트형제가 발명한 세계최초의 동력비행기(아래, Getty Images 제공)

AI-inspired Neuroscience(인공지능에 영감을 받은 뇌과학)

지금까지 논의한 예들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뇌에 대한 연구가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미친 영향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대다수의 뇌과학자들은 이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도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현상이나 물질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휘어짐은 1919년 유명한 개기일식에서 보인 별의 위치를 통해서 확인이 되었으며, 또한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의 존재도 증명이 되어 2020년에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기도 하였다.

뇌과학의 역사에서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례는 80년 대 컴퓨터 과학자들이 개발한 시간차 학습이라는 강화학습 알고 리즘에 대한 것이다. 이 알고리즘은 보상을 통해서 행동을 교정하여 보상을 최대화시키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인데 이 알고리즘이 추정하는 보상예측오류의 크기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즉, 보상에 대한 기대값을 예측하는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도파민이 보상의 크기 자 체보다는 실제 보상과 기대한 값의 차이에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 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라는 속담이 갖는 의미와 왜 상대방이 모르게 깜짝 선물을 준비하는지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또한 최근 2020년에는 구글 딥마인드가 발표한 네이처 논문에서 쥐의 뇌에서 예측하는 보상의 값이 다양한 도파 민 뉴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강화학습 모델 중 학습 성능이 뛰어난 ‘분포강화학습’ 이 실제로 뇌에서도 이루어 진다는 것을 입증한 것으로서, 이 역시 인공지능의 주요한 알고리 즘이 실제로 뇌에서 구현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최근 유행하는 딥러닝과 관련한 흥미로운 연구는 이미지를 인식하거나 아타리 게임을 수행하면서 학습된 딥네트워크(Deep network) 를 모델로 같은 과제를 수행할 때 실제 fMRI 에서 활성화된 패턴을 잘 예측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뇌에서의 정보가 처리되는 위계관계가 딥네트워크의 층들간 위계관계와 일치한 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모방한 딥러닝 방식이 개발되었는데 이제 역으로 딥러닝이 뇌가 실제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뇌과학의 도구로서의 인공지능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뇌의 기능 간에 연관관계를 밝힌 위에 언급된 예들 이외에도 인공지능 연구를 통해 개발된 다양한 알고리즘들은 뇌연구를 하는데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초에 최초로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가 투자한 뉴럴링크에서도 선보인 뇌-기계 접속 기술은 뇌에서 발생하는 뉴런들의 발화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예측하는 기계학습 알고리즘들을 이용한다 (그림 5). 2019년, 2020년 네이처와 그 자매지에 소개된 연구에서는 RNN (Recurrent Neural Network) 이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대뇌피질에서 얻어진 전기적인 신호를 피험자가 의도한 언어와 문장으로 변환함으로써 뇌-기계 접속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인간의 인지적 기능에 대한 연구도(그림 6) 2000년대 이후 기계학습 알고리즘들을 도입하였는데, 특히, 시각중추의 활성화 패턴을 분석하여 주어진 자극의 이미지나 영상까지도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유의미하게 재구성하는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꿈에서 보았던 이미지를 예측하는 연구도 2013년 사이언스지에 소개된 바가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중 혁신적인 생성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는 VAE(Variational Autoencoder) 와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모델을 이용하여 뇌의 시각중추에서 fMRI 로 얻어진 활성화 패턴으로 피험자가 보았던 얼굴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연구가 소개되었다(그림 7). 또한 인공지능 연구에서 자주 사용되는 확률적 추론방법 중 하나인 베이지언 추론 방식이 뇌가 외부의 자극을 처리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론으로 사용 되고 있다. 뇌를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브레인 커넥 톰이라는 개념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 또한 인공지능의 기술에도 적용되는 네트워크 이론들이 뇌의 복잡한 인지과정을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예이다. 결국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들이 다양해지고 보다 정교해지면서 실험에서 얻어지는 데이터의 품질이 높아지고 그 양도 많아지면서 이를 다루기 위한 인공지능의 기술들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초고해상도 7 테슬라 fMRI를 사용할 경우 한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수십테라바이트 정도는 쉽게 넘어서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사례들에서 인공지능과 뇌에 대한 두 연구분야는 현재까지 상호 간에 긴밀한 교류가 이루어져 왔으며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 가속화될 것이다.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 소개

이러한 배경 가운데 한양대학교에서 데이터사이언스학과와 심리뇌과학과로 구성된 인텔리전스컴퓨팅학부를 신설하였다(그림 8). 필자는 작년 가을에 심리뇌과학과에 신임 조교수로 임용이 되어 올해 첫 신입생을 받게 되었다. 위에서 다소 길게 배경에 대해 설명한 것은 한양대 심리뇌과학과에서 중점을 두고 수행할 교육과 연구 분야가 최근의 이와 같은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심리뇌과학과는 대학입시에서 자연계와 인문계 학생 모두 지원할 수 있지만 교육과정은 공과대학에 소속된 학과들과 유사해서 국내 대학에 있는 기존의 심리학과와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인다. 굳이 유사한 심리학 분야를 생각해 본다면 인간의 행동을 모델링하고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계 량심리학에 가깝다. 뇌과학 분야도 연구 방식과 주제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한양대의 심리뇌과학과는 인간의 뇌 기능을 연구하는 인지뇌과학, 그 중에서도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 방식, 의사결정, 기억 및 학습과 같은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과정 전체가 프로그래밍을 기본으로 데이터를 다루고 해석하는 분석적인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1학년 때는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배우고 데이터사이언스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과 이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수학과목들을 수강한다. 특히 최근 고교 교육과정에서 빠졌던 행렬과 벡터를 다루는 선형대수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미적분 과목도 공과대학의 교육과정과 유사하게 1학년 1, 2학기에 수강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2학년 때는 컴퓨터공학의 핵심적인 과목들, 예를 들어 자료구조론,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과 같은 과목들을 수강하고 선형 대수와 함께 데이터를 다루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인 확률과 통계 과목을 수강한다. 동시에 기본적인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1학년 때 배운 파이썬과 같은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실제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을 수강한다. 2학년 과정을 마치면 뛰어난 학생인 경우 현업에서도 인턴십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을 목표로 교과 과정을 구성하였다. 2학년 2학기에 인지과학의 개론을 처음 접하고 3학년 때부터는 계산인지과학, 인지행동모델링, 뇌영상기법과 같은 수업을 통해서 뇌의 정보처리과정, 기억 및 학습, 의사결정 과정 등 뇌의 고등인지기능을 배우게 된다. 동시에 인공지능의 주요한 과목인 딥러닝, 베이지언이론, 강화학습이론과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데 이러한 교과과정 구성이 한양대 심리뇌과학과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2학년 때까지 데이터를 다루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과목인 프로그래밍과 수학과목들을 수강한 후 3학년 때부터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주요 과목들을 수강하도록 하는 교육과정은 국내 어느 학교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데이터사이언스를 가르치는 학과에서 뇌과학을 접하기 쉽지 않고 뇌과학도 분야가 워낙 넓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계산인지신경과학에 초점을 맞춰서 교과과정을 구성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뇌과학과와 쌍둥이 같은 데이터사이언스학과가 1년 먼저 같은 인텔리전스컴퓨팅학부 내에 신설된 것도 이와 같이 두 분야에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한양대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림 8
한양대학교 인텔리전스컴퓨팅 심리뇌과학과 홈페이지
https://hyds.hanyang.ac.kr/front/unInfo2/depPsy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 전망

현재 미국과 유럽의 소위 과학 선진국에서는 뇌과학, 심리학, 인공지능의 융합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대부분의 연구 중심 대학은 뇌과학과가 학부과정에 있으며 심리학과 내에서도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고 인공지능 연구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처럼 뇌와 인공지능의 융합 연구와 관련된 산업은 구글의 딥마인드, 일론 머스크가 투자한 뉴럴링크와 같은 회사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많지 않다. 그나마 언급된 두 회사도 이윤을 만드는 것보다는 미래기술을 연구하는 것에 초점 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연구소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가 한 말처럼 범용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목표는 1960년대 달에 가려는 아폴로 프로젝트와 같이 인류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으나 인류의 꿈을 이루는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가운데 인류는 우리에게 닥친 수없이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울증과 치매, 자폐를 비롯해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기술을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각종 뇌질환을 극복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진보된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과학의 난제들을 풀고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뇌와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우리 인류는 의식의 본질, 즉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학과의 전망에 대해서 너무 거창하게 말하였지만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과는 이처럼 위대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고자 한다.

필자는 미국 유학 중 라이트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한 장소 인 노스캐롤라이나의 Kill Devils Hills 라는 곳을 가본 적이 있다(그림 9). 하늘을 날고자 했던 형제들의 위대한 도전정신과 목숨을 건 불굴의 의지와 신념을 생각할 때마다 경외감을 느낀다. 그곳에 세워진 라이트형제의 기념탑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말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In commemoration of the conquest of the air by the brothers Wilbur and Orville Wright. Conceived by genius. Achieved by dauntless resolution and unconquerable faith.

그림 9
필자가 10여년 전 방문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너 Kill Devils Hills에 세워진
라이트형제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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